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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츠 -

선수로서의 클린스만과 감독으로서의 클린스만의 비교

by 『Moongchiⓝⓔⓦⓢ』 2024. 2. 8.

 

유르겐 클린스만은?

1981년에 프로 데뷔하여 슈투트가르트, 인테르, AS 모나코, 토트넘, 바이에른 뮌헨, 삼프도리아 등에서 활약한 전설적인 스트라이커입니다. 그는 분데스리가 득점왕, UEFA컵 우승, 발롱도르 2위, FIFA 올해의 선수 3위 등 빛나는 성과를 남겼고, 독일 국가대표팀에서도 월드컵과 유로 우승을 경험했습니다.

 

현역 은퇴 후 독일과 미국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성공적인 지도자 경력을 쌓았으나, 클럽 감독으로서는 바이에른 뮌헨과 헤르타 BSC에서 실패했습니다. 2023년부터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으나, 기대에 못 미치는 경기력으로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클린스만 감독의 선수시절과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비교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선수로서의 클린스만

PL 출범 이후 토트넘의 전설

토트넘 시절 클린스만

 

해리 케인, 테디 셰링엄과 함께 토트넘의 최고 스트라이커로 꼽힘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의 월드클래스 스트라이커

 

레전드 공격수로서의 커리어

월드컵 통산 11골로 역대 6위 기록

센추리 클럽 회원으로 108경기 47골 기록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우승 및 대회 베스트 11 선정

발롱도르 2위 및 FIFA 올해의 선수 3위에 오른 명성

 

월드컵 무대에서의 빛나는 성과

월드컵에서 한국을 상대로 레전드골

 

클린스만은 세 번의 월드컵(1990, 1994, 1998)에 출전해 독일 대표팀의 공격을 이끌었습니다. 특히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주전 스트라이커로 활약하며 독일의 우승을 견인했고, 대회 베스트 11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네덜란드에게 선제골을 뽑아낸 직후 환호하는 클린스만

 

클럽과 국가대표팀에서의 차이점

선수로서 클린스만의 커리어는 국가대표팀에서 더욱 빛났습니다. 토트넘과 바이에른 뮌헨에서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름은 주로 독일 국가대표팀과 연결되어 언급됩니다.

 

축구 무대의 떠돌이 스타

유르겐 클린스만은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활약한 월드클래스 스트라이커로, 테디 셰링엄, 해리 케인과 함께 프리미어리그(Premier League, PL) 출범 이후 토트넘에서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하나로 꼽힙니다.

 

마르코 반 바스텐, 게리 리네커, 로베르토 바조, 호마리우와 같은 동시대 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카를하인츠 루메니게와 루디 푈러를 잇는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 독일 국가대표팀의 핵심 공격수로 활약했습니다. 클린스만은 월드컵에서 통산 11골을 기록, 역대 6위에 오르는 등 국제 무대에서 빼어난 성과를 거뒀으며,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우승을 포함해 여러 국제 대회에서 독일의 전성기를 이끌었습니다.

 

 

 









 

94월드컵 이후 30살로 노장 반열에 들어간 클린스만은 

토트넘으로 와서 시즌 30골 넣고 이피엘 mvp 먹음.

 

현지에서는 아크로바틱 다이버라는 수식어가 붙는 저 특유의 다이빙 세레머니.

 

토트넘에서 단 한 시즌 뛰고 뮌헨으로 이적, 

당시 유에파컵 역대 최다골 신기록 갈아치우고 95발롱도르 2위, 피파 올해의 선수 3위 (발롱도르는 조지 웨아)

 

이때 임팩트가 얼마나 오졌는지 토트넘에서는 아직도 역대 베스트로 클린스만을 자주 선정함.

 

 

클립스만의 독특한 커리어 경로

그러나 클린스만의 커리어는 특이하게도 소속 클럽에서의 상징적인 위치를 확립하는 데는 다소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는 그의 방랑형 커리어 경로와 연관이 있는데, 클린스만은 클럽 레벨에서는 주요 우승 타이틀이나 득점왕 타이틀을 차지하지 못한 채 여러 팀을 옮겨 다녔습니다.

 

토트넘에서의 단기간 활약과 바이에른 뮌헨에서의 유럽 컵 우승 등 눈에 띄는 성취에도 불구하고, 그의 클럽 커리어는 국가대표팀에서의 화려한 기록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상적이지 않게 여겨지곤 합니다. 이로 인해 다른 시대의 레전드 스트라이커들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낮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클린스만의 꾸준한 활약과 중요한 순간에서의 결정적 기여는 축구 역사에서 그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 있습니다.

 

 

 

 

 

감독으로서의 클린스만

바이에르 뮌헨 감독시절

감독의로서의 성과

독일과 미국 국가대표팀을 이끌며 새로운 전략과 혁신 시도

2006 독일 월드컵 3위 및 미국 대표팀 골드컵 우승 등 성과

 

바이에른 뮌헨과의 불화

 

클린스만은 2008년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으로 부임했으나, 전술적인 미숙함과 선수단 관리에서의 논란으로 인해 한 시즌 만에 팀을 떠나게 됩니다. 특히 바르셀로나에게 0-4로 패배한 챔피언스리그 경기는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미국 국가대표팀에서의 논란

미국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한 후에는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이라는 성과를 이뤘으나, 이후 성적 부진과 선수 관리에서의 논란으로 인해 결국 해임되었습니다.

 

유르겐 클린스만의 지도자로서의 이중적 평가

유르겐 클린스만은 선수로서는 독일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지만, 지도자로서의 커리어는 호불호가 크게 갈립니다. 독일 대표팀과 미국 대표팀 감독으로서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체계적인 전술 구사보다는 체력 훈련에 치중하고 전술적인 부분은 수석 코치에게 크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특히 바이에른 뮌헨 감독 시절에는 전술적 부족함과 더불어 근무 태도 논란까지 겹쳐 지도자로서의 평가가 크게 하락했습니다.

 

클린스만 지도법의 장단점과 논란

클린스만의 지도법에서는 선수단 관리와 동기 부여 능력이 강점으로 꼽히며, 이는 2006 독일 월드컵과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세부 전술과 경기 운영에서의 부족함, 그리고 클럽 팀에서의 부진한 성과와 근무 태도 논란은 그의 지도자 커리어에 큰 오점으로 남았습니다. 클린스만의 감독으로서의 성공 여부는 그가 맡은 팀의 구조와 필요에 얼마나 잘 부합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평가될 수 있으며, 그의 지도자 경력은 계속해서 엇갈린 평가를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결론

위르겐 클린스만은 선수로서는 전설적인 활약을 펼쳤으나, 감독으로서는 호불호가 갈리는 인물입니다. 그의 지도자 경력은 혁신적인 시도와 도전적인 접근으로 주목받았으나, 전술적인 부분과 일부 경기 운영에서의 논란으로 인해 다양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클린스만의 축구 여정은 선수와 감독 모두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것으로 평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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