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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중국 미술품에 자신의 인장(도장)을 찍어놓은 청나라 황제 건륭제

by 『Moongchiⓝⓔⓦⓢ』 2024. 4. 9.

 

청나라 6대 황제 건륭제

 

청나라 리즈시절인 강건성세(강희-옹정-건륭)의 마지막 타자이자

 

성공적인 다수의 정복전쟁, 탄탄한 내치 등 명군으로 칭송받는 인물인데

 

중국 미술사 전공자들은 이 인간 면상만 보면 이를 빠득빠득 감

 
 
 

건륭제는 스스로 육각형 꽉 찬 인물이라고 생각해서

 

예술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음. 

 

자신이 수집 할 수 있는 그림은 모두 수집하고

 

시상이 떠오르면 바로 시를 써서 생전 4만편이 넘는 시를 쓸 정도

 

 

 

그러나 

 

6꽉은 본인 착각이었고

 

 

후대에는 미친 반달리스트 홍력(본명)이라고 개쌍욕을 먹는다

 

 

 

일단 알아야 할 건 

 

예전 중국에선 명시, 명화 등을 가지게 되면

 

"내가 소유함"

 

이라면서 인장(도장) 찍는게 국룰이었음

 

더해서 자신있으면 보고 떠오른 시상으로 시를 한 구절 귀퉁이에 남기기도 했고

 
(인장 범벅된 중국 명화 - 작화추색도)

 

 

문제는

 

 

건륭제 인장은 황제 아니랄까봐 미친놈처럼 크다

 

 

 더군다나 보통은 양심적으로 가생이에 찍거나 하는데

 
 
(꽝)
 
(꽝)

 

건륭제는 그런거 모름

 

황제답게 당당하게 중간에 크게 꽝 찍어버림

 

 

 

심지어 건륭제는 도장도 많아서

 

보통 저런 도장이 진짜 많아봐야 150~200개인데 

 

이인갼은 중복 포함하면 천개가 넘음

 

 
(건륭제 인장의 극히 일부)

 

 

인장 찍는건 그때 누구나 그랬으니까 그럴 수 있다고 쳐도

 

홍력이가 욕을 바가지로 먹는 이유는 또 있는데 

 

위에서 언급했듯 이인간은 시를 4만편 이상 썼음

 

 

그말인즉슨

 

그림 보고

 

"캬 이쁘다"

 

하고 도장 꽝 찍고

 

"이걸 보니 이런 시가 떠오르는구나"

 

하고 빈 곳에 자작시를 남겼다는 거임

 

 

 
 .

(도장 + 시)

 

(도장 + 시)

 

 

더군다나 잘 쓴 시면 몰라도

 

건륭제 시는 진짜 허접스레기인데

 

그걸 여백에다가 끄적였다는거임

 

 

 

단적으로 20세기 유명 중국 문학평론가 전종서는 건륭제 시를 보고

 

"청고종(건륭제)은 또 문장으로 시를 지었으며 허사(虛辭)를 무분별하게 사용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구토(嘔吐)를 일으키게 한다"

 

라고 혹평을 남겼음

 

 

 

이게 그냥 중국 고관의 이야기여도 어지러운데

 

이인간은 당시 동양 최강국의 천자였다는게 문제

 

 

 

 

"아 조맹부(유명 화가) 그림 갖고싶다"

 

하면 바로 진상되고

 

"아 내가 떠오른 시가 있는데"

 

하고 읊으면 문무백관이 기립박수 치는 인간이라...

 

 

(일본에서도 유명한 반달리스트 건륭제)

 

 

그치만 건륭제는 죽을때까지 자기가 위대한 예술가라고 믿었고

 

말년에는

 

"내 나이 이제 90세를 바라보게 되었구나. 지금까지 창작한 시들을 모두 모으면 그 분량이 당나라 시인들이 지은 시와 거의 같을 것이다. 이는 어찌 문예의 숲을 이루고 아름다운 시어들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라는 개소리를 남기기도 함. 

 

 

심지어 본인 시를 첨삭해주고, 가끔 대필까지 해 준 심덕잠이라는 천재 시인이 있었는데

 
 

(심덕잠)

 

이 사람은 죽기 전에 남긴 시집에 자기가 첨삭하고 대필한 건륭제의 시를 수록했음

 

 

미친 건륭제는 나중에 그거 알고 야마돌아서 심덕잠 부관참시해버림

 

죄명은 반역

 

 

 

이 글 쓴 이유는

 

 

홍력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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