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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예 -

남진과 나훈아의 라이벌 이야기

by 『Moongchiⓝⓔⓦⓢ』 2023. 5. 25.

라이벌 남진과의 비교

남진과 나훈아는 1970년대부터 라이벌로 경쟁했고, 두 사람의 팬덤도 갈라져 있었다. 마침 언론 및 대중들이 두 사람을 라이벌 구도로 만들기 딱 좋은 차이점들이 여럿 있었다. 남진은 수려한 외모에 호방한 목소리로 대중성이 강했고, 나훈아는 상대적으로 외모가 투박했으나 싱어송라이터로 음악성을 어필하는 느낌이 강했다.

 

 

비슷한 시기의 인기가수 나훈아와 여러 면에서 상반된 이미지로 활동했는데, 나훈아가 시골의 정서나 고향의 향수를 노래했다면, 남진은 철저히 도시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나 도시의 느낌을 다룬 노래로 유명했다. 

노래의 성격 역시 남진은 도시의 세련된 이미지를 담은 가사를 주로 사용한 반면 나훈아는 고향에 대한 향수나 시골의 서정적인 분위기를 담은 가사를 주로 사용했다. 두 사람의 집안 배경조차 대조적이어서 나훈아는 선원인 아버지를 둔 부산의 평범한 집안이었고 남진은 목포의 부유한 집안이라는 출신의 차이도 있다.

 

오죽하면 신문에서도 두 사람을 대놓고 비교하는 칼럼을 시리즈로 실으면서 두 가수 팬덤 간의 견제와 싸움을 부추겼다. 그런데 이런 남진-나훈아 대결구도에 대해 남진 본인은 언짢은 반응을 보인다. 유재석이 MBC 토크쇼 놀러 와에서 남진에게 이 얘기를 꺼냈다가 면박(?)을 당한 적도 있다.

 

남진의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워딩은 방송용 치고는 강한 것이어서 유재석도 순간 당황하는 게 보인다. 그리고 그 날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남진은 녹화 도중에 일정이 있다며 먼저 자리를 떴다. 저게 진짜 스케줄 때문인지 아니면 자리를 박차고 나간 건지는 편집점 때문에 알 수 없는 부분이지만.


전체적으로 남진은 저음의 목소리에 수려한 외모를 가진 타고난 슈퍼스타로서 높은 대중성으로 가요대상을 매년 수상했고, 나훈아는 투박한 외모에 간드러진 목소리를 가졌다. 지금은 라이벌로 비교되는 2명이지만, 남진이 인지도를 얻게 된 것은 나훈아보다는 한참 앞서고, 라이벌이라고 불리게 된 건 1970년대에 들어서이다.

 

 

남진이 최고의 순간에 군대행을 택하고, 해병대의 모습으로 월남전까지 갔다 온 그는 묘하게도 그가 벤치마킹한 엘비스 프레슬리의 행보와도 매우 닮아 있었다. 엘비스는 1950년대 후반 로큰롤 음악이 기성 사회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고 몰락 위기에 빠지자, 군대에 자원 입대하여 이미지 쇄신을 노린 바 있다. 그 이후 G.I. Blues라는 곡과 동명의 영화를 발표하면서 "성실한 미국인 젊은이"의 이미지로 거듭났다. 남진 역시 엘비스의 G.I. Blues를 한국어로 번안하여 불렀다. 그리고 1973년 하와이 공연 때 엘비스가 입었던 점프슈트를 매니저가 직접 미국까지 가서 엘비스 프레슬리의 매니저를 직접 만나서 구해온 것도 유명하다.

 


1971년 군 제대 후 국내에 돌아와 보니, 자신의 영혼의 파트너 박춘석이 라이벌 나훈아와 손을 잡고 '물레방아 도는데' 등의 히트곡을 쏟아내는 중이라 이쪽과의 협력은 접고 다른 파트너(남국인)를 찾아 곡을 받고 다시 정상의 반열에 서게 되는데, 그 노래가 바로 남진의 최고 히트곡 중 하나인 "님과 함께"였다. 제대 후에 더욱 폭발적인 사랑을 받게 된 그는 국내 가수 최초로 서울 시민회관에서 귀국 기념 공연을 열었고, 컴백 4개월만에 TBC 남자가수상과 MBC 최고 가수상에 오른다.

언론은 그의 컴백과 더불어 당시 촉망받는 신인인 나훈아와의 라이벌 구도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초기 3년간은 남진이 내리 3연속 가수상을 타며 나훈아를 완전히 압도했다.

 


이후 1972년 '나훈아 피습사건'이라는 큰 사건이 터졌다. 이때 나훈아 피습사건의 범인으로 낙인이 찍혔고, 루머가 당시엔 급속도로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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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라디오 스타 622회에서 밝혔지만, 이어 남진은 "몇십 년 지나서 안 사실이다. 신성일 선배한테 그 괴한이 제일 먼저 갔더라. 그다음으로 저한테 왔다. 아침에 인기척에 눈을 떴는데 머리맡에 모르는 얼굴이 있었다"면서 괴한이 돈을 달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남진은 이를 거부했다면서 "(괴한이) 당신 라이벌을 해치면 돈을 줄 거냐고 말을 하더라. 정상이 아니구나 싶었다"라고 덧붙여 좌중을 경악케 했다.

 

 

`라스` 남진, `나훈아 피습 사건` 전말 공개… "괴한이 찾아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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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남진은 "그러고 나서 며칠 있다가 사고가 난 거다. 나중에 저희 목포 집에 와서 방화도 하고 그랬다. 어머니가 계신 집이었다. 지금도 마음이 아픈 게, 저희 할아버지, 할머니 초상화가 탄 게 지금도 성질이 난다"고 고백해 놀라움과 안타까움을 안겼다.

 

 

두 사람의 상반된 외모 차이와 분위기 탓에 양쪽 팬덤에서도 라이벌 대립각이 만들어져서, 당시 공연장에 가면 남진 팬들은 나훈아에게 '소도둑놈 저리가라'고 외치고, 나훈아 팬들은 남진에게 '돼지 멱따는 소리 치워라'라 외치며 공방전이 벌어졌다고 한다. 80년대 칼럼 두 사람은 '어머님 생전에(1973년)'같은 영화에 나란히 출연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는 남진이 인기가 좀 더 많았지만 나훈아가 후에 부각되며 라이벌로 불리게 되었다. 그 이후에도 예술적인 곡을 많이 작곡, 작사를 한 나훈아는 가수, 예술가로서 확실한 자리를 잡는다.

남진 콘서트도 매번 매진되지만 나훈아 콘서트는 티켓은 발매를 개시하자마자 10초도 안 되어서 동나기 때문에 콘서트 가기가 하늘의 별따기에 가깝다. BTS, 이승환, 한국시리즈 7차전, 빅뱅, 명절 전 일반 열차, LCK 결승전 급으로 티켓 예매하기 어려우며, 아들 딸 전부 동원해서 예매를 해도 성공하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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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것은 활동노선의 차이도 있다. 나훈아는 극도의 신비주의로 신곡을 발표하는 텀도 길게 두고, 신곡도 오직 콘서트에서만 들을 수 있다. 방송 출연도 거의 하지 않는다. 반면 남진은 가요 프로그램이나 예능 출연도 잦고 후배들과 자주 협업하는 등 트로트 가수치고는 다작하는 편이다. 남진의 팬 입장에서는 '반드시 콘서트에 가야 할'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다.

 

이는 가수로서의 각자의 철학에 따른 것이기도 한데, 나훈아는 '저 하늘 위의 별'로서 본인을 포지셔닝한 반면 남진은 어디까지나 '대중의 친구'를 지향했다. 아이돌 가요계에 비유하면 코어팬덤형 아이돌과 대중형 아이돌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누가 맞고 틀린 게 아니라 두 사람이 가진 가수로서의 가치관이 다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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