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국립 현충원은?
서울 국립 현충원은 서울특별시 동작구 현충로 210 (동작동)에 소재한 국립묘지이다.
6.25 전쟁 발발로 인해 늘어나는 국군 전사자를 안치하기 위한 육군 국립묘지로 1952년 5월부터 계획되어 1953년 서울 동작동 부지 선정, 1954년 착공, 1956년에 개장, 안장이 시작되었다.
개장 당시의 명칭은 '국군묘지'였다. 1965년 국립시설로 승격되어 '국립묘지'로 불리었다. 이후 2006년에 '현충원'(顯忠院)으로 변경되었다. 현재 대한민국 국방부 산하 기관이다.
개장 당시에는 6.25 전쟁 때 전사(戰死)했던 군인, 대한민국 군무원, 종군자 등을 안장하는 위주로 갔었으나, 국립묘지로 승격되면서 일제강점기 때 일제(日帝)에 맞서 싸우다 순국(殉國)한 애국자 및 독립유공자 등의 호국영령을 비롯해 경찰, 향토예비군 등의 영현까지 안장함에 따라 호국 보훈 및 추모 시설로 범위를 넓혀나가게 되었다.
묘역으로는 일반 묘역과 애국자 및 독립운동가 묘역, 군인 묘역, 경찰 묘역, 무명용사 묘역 등이 있으며, 현충탑, 현충문, 현충선양관, 충렬대, 전쟁기념관, 무명용사의 탑이 있다.
주요 안장자 리스트
대통령
1-3대 이승만 대통령 + 영부인 프란체스카 도너
5-9대 박정희 대통령 + 영부인 육영수
14대 김영삼 대통령
15대 김대중 대통령 + 영부인 이희호
독립유공자
박승환 (1869~1907)
박은식 (1859~1925)
박열 (1902~1974)[위패안장자]
백초월 (1878~1944)[위패안장자]
양기탁 (1871~1938)
이상룡 (1858~1932)
이회영 (1867~1932)
지청천 (1888~1957)
홍진(1877~1946)
송진우 (1890~1945)
신규식(1880~1922)
노백린 (1875~1926)
서재필 (1864~1951)
김상옥 (1889~1923)
김재근 (1894~1964)
김란사 (1872~1919)[위패안장자]
김규식 (1881~1950)[위패안장자]
전명운 (1884~1947)
장인환 (1876~1930)
기산도 (1878~1928)
권기옥 (1901~1988)
강우규 (1855~1920)
이범윤 (1856~1940)
유관순 (1902~1920)[위패안장자]
박재혁(1895~1921)
신돌석 (1878~1908)
우덕순 (1879~1950)
문일민 (1894~1968)
안혜순 (1905~2006)
이민화 (1898~1923)
최재형 (1860~1920) [위패안장자]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1889~1970)
장후이린 (1925~1951)
웨이 쉬 팡 (1923~1989)
국가유공자
이범석 (1900~1972) - 초대 국무총리
허정 (1896~1988)
김홍일 (1898~1980)
안익태 (1906~1965)
주시경 (1876~1914)
조만식 (1883~1950)
장택상 (1893~1969)
박태준 (1927~2011)
남덕우 (1924~2013)
안호상 (1902~1999)
박동진 (1922~2013)
이은상(1903~1982)
전명세(1932~1971)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희생자들
- 이범석 (1925~1983) - 제19대 외무부장관
- 서석준 (1938 ~ 1983)
- 김재익 (1938 ~ 1983)
- 함병춘 (1932 ~ 1983)
- 민병석 (1929 ~ 1983)
군인
장군
장군묘역 안장자
김종오 육군 대장 (1921~1966)
김홍한 육군 대장 (1931~1984)
김강섭 육군 준장 (1930~1969)
김정환 육군 준장 (1925~1969)
안도열 육군 준장 (1926~1969)
정일권 육군 대장 (1917~1994)
임충식 육군 대장 (1922~1974)
한신 육군 대장 (1922~1996)
이현부 육군 중장 (1943~1992)
백운택 육군 중장 (1932~1982)
정병주 육군 소장 (1926~1989)
손원일 해군 중장 (1909~1980)
박옥규 해군 중장 (1901~1971)
최용덕 공군 중장 (1898~1969)
장덕창 공군 중장 (1903~1972)
김정렬 공군 중장 (1917~1992)
김영환 공군 준장 (1921~1954)
김창규 공군 중장 (1920~2020)
박범집 공군 소장 (1917~1950)
전성호 육군 준장(1896~1950)
타 묘역 안장자
채명신 육군 중장 (1926~2013. 사병 묘역)-유언에 따라서 장군 묘역이 아닌 최초로 사병 묘역에 안장된 장군이다.
황규만 육군 준장(1930~2020. 장교 묘역)- 유언에 따라서 6.25에서 전사해서 장교 묘역에 안장된 김수영 소위 옆에 김수영 소위의 묘를 나눠 쓰는 방식으로 함께 안장되었다.
육근수 육군 준장(1923~1953. 위패)-수도사단 1 연대 연대장으로 1953년 금성 전투에서 전사했다. 전사 당시 계급은 대령이었으며 후에 준장으로 추서 되었다. 시신을 수습하지 못해서 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는 장성급 장교중 유일하게 위패가 안장되어 있다. [위패안장자]
장교
김현숙 육군 대령 (1915~1981)
김수영 육군 소위(1922~1950)
강재구 육군 소령 (1937~1965)
차성도 육군 중위 (1947~1970)
최창식 육군 대령 (1921~1950) [위패안장자]
김만술 육군 대위 (1929~1991)
김홍준 육군 소령 (1910~1946)[위패안장자]
박진경 육군 대령 (1920~1948)
이건국 육군 대령 (?~1951)
조창호 육군 중위 (1930~2006)
안정태 육군 대위 (1940~1965)
박명렬 공군 소령 (1952~1984)
박인철 공군 소령 (1980~2007)
박경석 육군 중위 (1933~) [철거]
부사관
서부덕 육군 이등상사, 박창근 육군 하사 및 육탄10용사 (~1949)
강덕수 육군 하사 (?~1953)
안학수 육군 중사 (1943~1975)[위패안장자]
노웅기 육군 중사 (1941~1965)
병
대한해협 해전 참전 전사 수병들
전병익 해군 일등병조 - 포탄 장전수, 1929년 6월 24일생, 충북 음성군 출신으로 1948년 6월 해군신병 제10기로 입대.
김창학 해군 이등병조 - 조타수, 1929년 1월 29일생, 경기도 평택시 출신으로 1948년 6월 해군신병 제10기로 입대. 치명적인 흉부 관통상을 입은 후 치료도중 "적함은 어찌 되었습니까?"라고 갑판사관에게 물어보았고 "괜찮다. 모두 침몰하였다."라는 대답을 하자 "갑판 사관님. 끝까지 싸우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대한민국 만세!"라는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장상철 육군 상병 - 2번 사병 묘역에 안장된 채명신 육군 중장 바로 뒷편에 자리하고 있다. 월남전 참전용사로 채명신 장군과 동고동락하며 채명신 장군의 명령을 받았다고 한다.
김지훈 공군 일병 (1992~2013)
윤승주 육군 상병 (1993~2014) - 충혼당 안치
조준우 육군 일병 (1998~2019)
경찰
진덕수 경사
계용훈 경위
안병하 치안감
최규식 경무관 1.21사태때 무장공비와 교전 중 전사
기타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1879~1970) - 자신이 사망하면 한국 땅에 묻어달라는 유언이 있었고, 독립운동에 기여한 업적을 기리고자 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되었다.
김재현(1923~1950)
창빈 안씨(1499~1549) - 조선 시대부터 묘역이 만들어져 있다가 현충원이 조성될 때 의도치 않게 겹친 것.
박병선 (1923~2011)
하일성 (1949~2016) - 베트남 전쟁 참전 용사 자격으로 현충원 충혼당에 안치되었다.
서윤복 (1923~2017)
천규덕 (1932~2020) - 한국전쟁 참전용사 겸 화랑무공훈장 수훈자 자격으로 안장되었다, 배우 천호진의 부친이다.
민주화운동에 투입된 계엄군 중 28명 - 그 외에도 일부 무자격자가 안치되어 있는데, 사실 이는 대전도 마찬가지. 아마 대대적인 조사를 하지 않는 이상 무자격자들을 가려내긴 어려울 것이다. 일부 무자격자라지만 거의 만장인 서울현충원을 감안했을 때 일부가 백 명이 넘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 계엄군 외에도 친일 반민족행위자나 베트남 전쟁 때 현지 여성을 강간한 강간범들도 묻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 모두가 발포하거나 범죄를 지른 자들이란 뜻은 아니다. 경찰들 경우 안병하 경무관 명령 아래 절대 과잉진압을 하지 않았지만 순직한 경찰관들도 있었고 계엄군도 말그대로 억지로 끌려왔다가 전교사와 11 공수여단의 오인총격전과 같이 교전 도중 순직한 군인들도 있다. 일일이 그들이 무슨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없어서 안장 자격의 유무를 밝혀내기는 어렵다.
황재중 (1908~1950) 문산호 선장 외 장사상륙작전에 당시 투입 되었던 문산호 선원 전사자 11명[위패안장자]
백광남 (1933~1966) 종군 기자-백광남 기자는 1960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1966년 10월에 주월특파원으로 부임해 활동하다 11월 28일 디안 부근에서 취재를 마치고 사이공으로 귀환하던 중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베트남 전쟁에서 종군한 한국인기자 중 최초의 희생자이자 유일한 순직기자였다. 백광남 기자는 후에 화랑무공훈장을 추서 받고 서울현충원 51번 묘역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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