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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6.25 한국전쟁 영웅 / 영국의 글로스터셔 1대대

by 『Moongchiⓝⓔⓦⓢ』 2023. 6. 7.

망할 뻔한 나라를 구했지만 아는 사람은 거의 없는 부대

글로스터셔 연대(Gloucestershire Regiment)는 1881년부터 1994년까지 활동한 영국 육군의 보병연대로, 일반적으로 글로스터스(Glosters)라고 불린다.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 한국 전쟁 등에 참전하였다. 임진강 전투에서 1대대가 압도적인 역경 속에서 3박 4일 동안 버텨내어, 한국 전쟁 당시 영연방 제29보병여단 소속으로서 명성을 얻었다 . 당시 주한 유엔군 사령관이 "현대 전쟁에서 가장 뛰어난 부대 용감성의 본보기"라고 묘사한 이 대대는 다른 유엔군이 포위되는 것을 막았고, "영광스러운 글로스 (The Glorious Glosters)" 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1951년 4월 20일,

 

중국은 1월 공세의 실패를 다시금 만회하기 위해 중공군 4개 병단 (동-서 전선에 걸쳐 총 70개 사단)을 본국에서 동원한다.

 

이른바 춘계 대공세의 시작이다. 

 

 

1차 목표는 서울. 팽덕회는 노동절 기념행사를 서울에서 열겠다며 결의를 다진다.

 

서부전선에는 3, 9, 19 병단(약 30여 개 사단)이 배치됐다.

 

이 중 주공은 19 병단으로 파주와 의정부를 공략한다. 

 

인민군 1군단은 문산을 거쳐 고양으로 진격한다.

 

 

중부전선 제40군은 적성-가평 축선으로 우회 기동해 퇴각하는 적을 섬멸하고,

동부전선에서 서부전선으로의 아군 증원을 차단한다. 

 

 

 

좀 더 쉽게 말해 이 당시 공세에 동원된 병력은 총 70개 사단.

 

70만 명에 이른다. 이 중 약 절반 이상의 대병력이 서부전선으로 몰려들었다.

 

 

 

당시 파주 전선을 담당하고 있던 부대는

 

좌측에 국군 제1사단, 미 제1군단 소속 3 보병사단, 그리고 영국군 글로스터셔 1대대와 벨기에, 터기 대대였다.

 

이 병력으로 수십 개의 사단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 

 

 

 

 

1951년 4월 20일, 글로스터셔 1대대 본부

 

 

대대장님! 중공군 대부대입니다. 군단급 이상입니다!

 

 

 

(영국군 글로스터셔 여단 제1 대대장 제임스 칸 중령 )

정확한 규모는? 

 

 

세 개 병단입니다. 주공은 63 병단. 최소 3개 군단 이상, 25개 사단입니다. 

 

조우 중인 병력은 63병단 소속 190사단입니다. 

 

 

 

한국군 1사단이랑 미 3사단 라인은?

 

 

한국군 1사단 12 연대가 방어선을 치고 저항 중이지만 파평산 고지를 집요하게 노리고 있습니다.

 

우리 쪽과 한국군 1사단과의 협조점을 집요하게 공격 중입니다.

 

 

 

감악산에서 전열을 정비한 후 최대한 버틴다.

 

 

???? 버티다뇨. 저쪽은 최소 군단급입니다

 

 

 

여기가 무너지면 미 1군단부터 한국군 1사단까지 전부 포위섬멸이야.

전 전선에 걸쳐 대공세를 펼치는 거라면 우회 기동하는 중공군 병력이 분명 있겠지.

 

 

 

그렇다면??

 

우리가 시간을 끌어줘야만 하네. 안 그러면 서부전선은 완전 붕괴야. 

 

그러면 동부전선은 무사할 것 같나? 모두가 궤멸되고 말겠지. 

 

우리 대대는 여길 지킨다.

 

 

한편 1사단은 파평산을 주저항선으로 퇴각과 역습을 반복한다.

 

지연 전을 펼치며 어려운 싸움을 해내는 도중,

 

64군 병력들의 예봉이 꺾인 걸 확인한 후 봉일천 방면으로 철수를 감행한다.  

 

 

(국군 제1 사단장 강문봉)

 

다 준비됐나? 철수를 시작한다. 

 

 

 

사단장님, 영국군 1개 대대가 포위됐습니다

 

 

???? 얘네 아직 철수 안 했어? 뭐야 이것들.

 

 

 

그 친구들이 먼저 철수했다면 12 연대가 포위됐을 겁니다. 

 

 

 

 

... 빨리 포위망 뚫고 살려와!

 

 

 

 

1사단은 여러 차례 병력을 보내 글로스터 1대대 본대를 구하려 했지만 

 

포위망이 너무 두터워 실패한다. 간신히 D중대만을 구해낸 상황. 

 

 

 

 

여단 본부에 칸 대대장이 보낸 송신 

 

  "우리가 어떤 처지에 놓여있는진 알겠습니다. 제가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제 부대는 더 이상 효율적인 작전 수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현 위치를 고수해야 한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대장님, 이제 탄약도 없습니다. 전투가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끝까지 자리를 지킨다. 동시에 전 병력에게 투항을 허락한다. 투항해도 좋다. 

 

 

칸 중령과 장병들은 중공군의 포로가 되어 북한 수용소에서 1953년 8월까지 28개월 동안 포로로 억류되었다. 

 

하지만 그 헌신은 한국을 구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값진 것이었다. 

 

 

 

 

글로스터셔 대대가 자리를 고수하지 않았다면 서부전선을 담당하던 병력들 전부 

 

우회기동하던 중공군 40군 병력에 의해 포위될 수도 있었다.

 

 

 

그랬다면 동부전선의 서측단에도 구멍이 생겨 우회침투를 당할 가능성이 생긴다. 

 

쉽게 말해 전선이 양쪽으로 나눠져 끊임없이 우회침투를 당하며 주저앉았을 거라는 얘기. 

 

 

중공군의 기동 속도를 감안하면,

 

어쩌면 서울이, 대전이, 광주가 함락될 때까지 공세를 막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국방부가 매년 글로스터셔 1대대 참전용사들을 모셔 극진하게 대접하고 기념행사를 여는 것도 그래서다. 

 

 

단순히 먼 나라에서 찾아와 싸워준 걸 넘어서, 망할 뻔한 나라를 통으로 구해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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